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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 여행 : 도른자 내 남편

여행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나를 설레게 한다.  마치 첫 데이트 날처럼...

 

 

 

 

 

수년 전 내게 소중한 여행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억은 늘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어느 늦은 봄쯤 한국에 계신 친정부모님께서 미국 여행을 하고 싶으셔서 연락을 하셨고 나는 우리가 미국 오고 10년 만에 친정 부모님을 보게 되는 거라 아이들 여름방학에 맞춰 여행 계획을 잡아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미국에서 지난 10년간 미국 생활에 적응해야 했고 여름마다 여행을 갈만한 여유가 없이 살았었기 때문에 여행이라는 말 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우선 오시면 우리가 사는 미시간 안에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곳과 hidden places도 꽤 있었기 때문에 미시간부터 보여 드리고 가까운 시카고는 기차여행을 해도 좋고 남편이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낼 수 있으면 서부 한 군데쯤은 같이 비행기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쨌든 그 당시 나는 일하는 곳에 양해를 구하고 한 달 동안 쉬기로 했고 한 달 동안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들을 생각하며 여행 계획을 짰다.

 

밤에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고 부모님이 한 달 후 놀러 오신다는 얘기를 했고 남편도 직장에 가서 일주일이라도 휴가를 내 보기로 했다.

 

여행 계획을 나름대로 열심히 세우고 있는데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황당한 얘기를 했다.

부모님이 오시는 한 달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 드리다가 가시면 다시 일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남편이 지금 다니는 직장을 좋아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저러지? 

부모님 오시는 그 한 달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둔다는게 말이 되나?

누가 부모님하고 여행을 가려고 직장까지 그만둘까?  

아무리 우리가 부부라도 내 부모님인데 이렇게 까지 생각할 수가 있나?

이 사람이 돌았나?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있나?

 

정말 여러 생각에 마음이 참 복잡했다.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내가 모시고 갈 수 있는 곳 위주로 가고 혹시 다른 곳은 여행사를 이용하겠다고 말하고 

남편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부모님을 10년 만에 만나는 건데 직장이 뭐가 중요하냐?

연세가 있으신데 자주 오실 수도 없지 않으냐?

10년 만에 만나는 건데 내가 같이 가야 더 많은 곳을 구경시켜 드리지 않겠느냐?

 

당신이 혼자 애들이랑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니기가 여간 힘들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같이 가면 운전해서 차로 가도 되고 비행기를 타고 가도 되고 또 거기 가서도 렌트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장거리 운전을 해 줘야 하지 않냐?

 

미국이 얼마나 위험한데...

어차피 직장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일주일 휴가를 내주지도 않을 것이고

직장이야 또 새로 구하면 되고 오라는 곳도 여러 곳이 있으니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께 집중하자 등등 

 

거의 한 시간 가량 계속되는 남편의 말에 나는 완전히 압도되어 그냥 "Okay" 하고 말았다.

사실 처음에 남편 의견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남편에게 한 없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 친 부모도 아닌데 이렇게 까지 하는 남편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남편의 숭고(?)한 저세상 mental로 우리의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